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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신과 나눈 이야기 1

     

     

    모든 영혼이 제 갈 길을 가게 하라는 법칙 - 우주의 성스러운 법칙

     

    너희가 하기로 선택한 그 모든 일에서 너희의 잠재력은 무한하다. 

    소위 장애 있는 신체를 지닌 한 영혼은 자신의 잠재력을 완전히 실현한 것이 아니라고 억측하지 마라.

    너희는 그 영혼이 무엇을 하려는지 모른다.

    너희는 그것의 진행과정을 이해하지 못하며, 그것이 뜻하는 바가 무엇인지 모른다.

     

    그러므로 모든 사람과 모든 조건을 축복하고 그것들에 감사하라. 신이 창조한 것들의 완벽성을 인정하고 

    그 창조물들에 믿음을 보여라. 신의 세계에서는 어떤 것도 우연히 일어나지 않으며, 우연의 일치 같은 건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또한 마구잡이식 선택이나 너희가 운명이라 부르는 것들 역시 그 세계를 희롱할 수도 없다.

     

    하지만 예수조차도 병자를 치료했습니다. 만일 그들의 상태가 그토록 '완벽' 했다면 예수는 왜 그들을 치료했을까요?

     

    예수는 그들의 상태가 불완전하다고 생각해서 그들을 치료한 게 아니었다. 그는 그 영혼들이 자기 과정의 일부로서 치료를 요청한다고 보았기 때문에 그렇게 한 것이다. 그는 그 과정의 완벽성을 알고 있었다. 그는 그 영혼이 뜻하는 바를 인정하고 이해했다. 

     

    왜 신은 그것이 어떤 고통이든 항상 고통을 묵인하는가? 과거에도 줄곧 제기되어 온 이 질문의 대답은 항상 똑같다.

    그 과정 속에 완벽함이 존재한다는 것. 게다가 무릇 삶이란 선택에서 비롯된다. 선택에 간섭하거나 선택을 문제 삼는 건 적절하지 않다. 선택을 비난하는 건 특히나 적절하지 못하다.

     

    그러므로 남들의 선택을 주의깊게 지켜보되 판단하지는 마라. 지금 이 순간의 선택이 완벽하다는 걸 그들이 깨닫게 해 주라. 그러나 그들이 더 새로운 선택, 또 다른 선택, 즉 더 고상한 선택을 하려는 때가 오면 기꺼이 그들을 도울 수 있게 옆에 서 있어라.

     

    예수는 자기에게 온 사람들이나 다른 사람들을 보내 치료해달라고 간청하는 사람들을 모두 치료했다. 그는 닥치는 대로 마구 치료한 게 아니었다. 그렇게 했다면 그건 우주의 성스러운 법칙을 모독하는 일이었을 것이다.

    즉 모든 영혼이 제 갈길을 가게 하라는 법칙을.

     

     세상의 모습은 인간의 선택이다

     

    모든 건 오로지 너희가 그렇다고 보기 때문에 옳거나 그를 뿐이다. 어떤 것이 그 본질에서부터 옳거나 그른 것은 아니다.

     

    "옳음"이나 "그름"은 본래의 상태가 아니다. 그것은 개인의 가치 체계 속에만 있는 주관적인 판단이다.

    너희의 주관적인 판단들로 너희는 자신의 자아를 창조한다.

    너희는 너희 개인의 가치들로 '자신이 누구인지' 판단하고 증명한다.

     

    세계는 너희가 이런 주관적인 판단들을 내릴 수 있도록 하려고 지금 같은 모습으로 존재한다.

    만일 세계가 완벽한 상태로 존재한다면 자기 창조라는 너희 삶의 과정은 종막을 고할 것이다. 

     

    더 이상 소송이 없다면 변호사가 할 일은 내일이면 끝날 것이다.

    더 이상 병이 없다면 의사가 할 일도 내일이면 끝날 것이다.

    더 이상 의문이 없다면 철학자가 할 일도 내일이면 끝날 것이다.

     

    즉 우리 모두가 그 게임을 지속시키는 것에 기득권을 휘두르고 있는 것이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우리가 할 일이

    하나도 남아나지 않을 것이기에.

     

    너희의 군산복합체는 이점을 아주 잘 이해하고 있다. 그것이 세계 도처에서 더 이상 전쟁하지 않는 정부를 세우려는 모든 시도를 강력하게 막는 이유가 바로 여기 있다.

     

    너희의 의료기관들 역시 이점을 잘 이해하고 있다. 그런 기관들이 기적의 가능성 자체에 대해서는 말할 것도 없고, 새로운 모든 기적의 약이나 치료법에 완강히 반대하는 이유가 여기 있다. 자신들의 생존을 위해서는 그렇게 해야 하고, 그렇게 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너희의 종교단체들 역시 이 점을 확실히 알고 있다. 그런 단체들이 한결같이 두려움과 심판과 응보가 들어있지 않은 신에 대한 모든 정의와 신에게 이르는 유일한 길과 관련하여 자기네 이념이 들어있지 않은 모든 자아규정을 공격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세상에는 항상 문젯거리가 존재할 거라고 말씀하시는 건가요? 세상이 그런식인걸 당신이 참으로 원한다고 말씀하시는 거냐고요?

     

    그런 식으로 세상을 창조한 건 너희다. 너희가 지금 있는 꼭 그대로의 너희 삶을 창조했듯이. 

    나는 너희가 원하는 걸 원한다.  너희가 진실로 굶주림의 종식을 원하는 바로 그날, 더 이상 굶주림은 존재하지 않을 것이다. 나는 너희에게 그렇게 할 수 있는 모든 자원을 주었다.  너희는 그런 선택을 내릴 수 있는 모든 도구를 갖고 있다.

    너희는 그것을 선택하지 않았다. 인류는 내일이면 이 세상의 굶주림을 끝장 낼 수 있다.

    그러나 너희는 그렇게 하지 않는 쪽을 선택하고 있는 것이다.

     

    너희는 너희의 환경을 체계적으로 파괴하면서, 이른바 자연재해들을 신의 잔혹한 장난이나 자연의 냉혹한 법칙을 보여주는 증거로 들이대고 있다. 장난을 쳐온 쪽은 너희고, 잔혹한 쪽은 바로 너희의 법칙이다.

    어떤 것도, 다른 어떤 것도 자연보다 더 온화하지는 않다. 그리고 어떤 것도, 다른 어떤 것도 인간보다 더 자연에 잔혹하게 대하지는 않는다. 

     

    너희는 내일이라도 열대우림의 파괴를 끝내는 쪽을 선택할 수 있다. 너희는 너희 행성 위를 떠도는 오존층의 고갈을 그만두는 쪽을 선택할 수 있다. 너희는 지구의 정교한 생태계에 대한 쉼 없는 공격을 멈추는 쪽을 선택할 수 있다. 

     

    마찬가지로 너희는 내일 당장 모든 전쟁을 끝낼 수 있다. 쉽고도 간단하게. 필요한 건. 지금까지 항상 필요했던 것은 너희 모두가 동의하는 것뿐이다. 그러나 만일 너희가 서로 죽이는 짓을 끝내는 것처럼 극히 간단한 일에도 함께 합의를 볼 수 없다면, 어떻게 하늘에다 대고 종주목을 치면서 너희의 삶을 질서 잡히게 해달라고 외쳐댈 수 있단 말인가?

     

    너희 스스로 하지 않는 어떤 것도 내가 너희를 위해 하지는 않을 것이다. 이것은 법칙이고 예언이다.

     

    세상이 지금 상태대로 존재하는 것은 너희 때문이고, 너희가 내린 선택들 때문이다. 

    지구가 지금 모습대로 존재하는 것도 너희 때문이고, 너희가 내린 선택들 때문이다.

    너희의 삶이 지금 방식대로인 것도 너희 때문이고, 너희가 내린 선택들 때문이다.

     

    그런데도 너희는 여기에 절대 말려들지 않으려고 옆으로 비켜선다. 모든 책임을 부정한다. 너희는 그것이 자신의 잘못이 아니라고 말하는데, 이 점에서는 너희가 옳다. 그건 잘잘못의 문제가 아니다. 그것은 선택의 문제다.

     

    우연의 일치란 없다

     

    하지만 사람들은 이렇게 말할 겁니다. 저는 그 따위 트럭에 치이길 선택하지 않았습니다!  저는 그 강도에게 습격당하거나, 그런 미치광이에게 강간당하길 선택하지 않았습니다.  

     

    너희 모두가 도둑의 마음속에 훔치려는 욕구, 즉 감지된 필요를 만들어낸 상황의 원인 제공자들이다.

    너희 모두가 강간을 가능케 하는 의식을 창조했다.

    너희가 자신에게서 범죄를 일으킨 이런 면을 볼 때에게야 비로소 너희는 그런 범죄가 일어나는 상황을 치유할 수 있다.

     

    굶주린 사람들에게 먹을 걸 주고 가난한 사람들에게 존엄성을 부여하라. 운 나쁜 사람들에게 기회를 줘라. 더 나은 내일이라는 사소한 약속으로 대중을 움츠러들게 하고 화나게 만드는 편견을 끝장내라. 성(性) 에너지에 대한 무의미한 금기와 억압들을 치워버려라. 그보다는 성 에너지의 경이를 진실로 이해할 수 있게, 그것이 자연스럽게 흐를 수 있게 사람들을 도와주어라. 그러면 너희는 강도와 강간을 영원히 종식시키는 사회로 나아가는 긴 여정에 들어설 것이다.

     

    모퉁이에서 느닷없이 트럭이 튀어나오고 하늘에서 벽돌이 떨어지는, 이른바 "사고란 것"에 대해서는 그런 개개 사건을 더 큰 모자이크의 작은 일부로 받아들이는 법을 배워라. 너희는 자신을 구원하려는 각자의 계획을 실행하고자 이곳에 왔다.

    그러나 구원이란 게 악마의 함정에서 벗어난다는 뜻은 아니다. 악마 같은 건 결코 없으며 지옥은 존재하지 않는다.

    너희는 실현되지 않음이라는 망각의 늪에서 자신을 구해내고 있는 것이다.

     

    사고는 그것이 일어나기 때문에 일어난다. 사고란 삶의 특정요소들이 특정한 방식으로 특정한 시간에 특정한 결과들, 너희가 나름의 이유로 불운이라 부르기로 선택한 결과들을 가지고 함께 모여든 것이다. 그러나 사고는 전혀 불운이 아닐 수도 있다. 너희 영혼이 나아갈 일정이란 면에서 보면.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우연의 일치란 없으며, 어떤 일도 우연히 일어나지 않는다. 각각의 사건이나 모험은 '참된 자신'을 창조하고 체험하기 위해서 너희 스스로 불러들인 것이다.

     

    너희가 생각하는 것이 현실이 된다.

     

    기독교의 위대한 선각자들은 이 점을 이해하고 있다. 그들은 예수가 십자가에 못 박히면서도 동요하지 않았고, 오히려 그것을 원했다는 걸 알고 있다. 그는 스스로 인간의 영원한 구원의 상징이 되기 위해 십자가에 못 박히는 걸 허용했다.

     

    그는 내가 어떤 일을 할 수 있는지 보라, 무엇이 진실인지 잘 보라, 그리고 너희 역시 이런 일들, 아니 이보다 더한 일들도 할 수 있다는 걸 깨달아라, 그러기에 내가 너희가 바로 신이라 하지 않았더냐, 그런데도 너희는 믿지 않는다, 너희가 정 자신을 믿지 못하겠다면 나를 믿으라고 말했다.

     

    예수의 연민은 그토록 커서 모두가 다 하늘나라(자기실현)에 이를 수 있게끔 세상에 강력한 충격을 줄 수 있는 방법을 청했고, 다른 방법이 전혀 없다면 자기를 써서 그렇게 해달라고 청했다. 그는 불행과 죽음을 굴복시켰기에 드디어 그 방법을 창조할 수 있었다. 그리고 너희 역시 그렇게 할 수 있다.

     

    이것을 아는 게 너희에게 필요한 전부다. 왜냐하면 너희 현실의 창조자는 너희이며, 삶은 너희가 그렇게 되리라고 생각하는 꼭 그대로 실현될 수 있기 때문이다.

    너희가 생각하는 것이 현실이 된다. 이것이 창조의 첫 단계다. 성부(聖父)는 생각이다. 너희의 생각은 모든 것을 낳아주는 부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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